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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회

@soiree_dansante

CABARET

/

 

printemps

 

        타닥.

 

        타다닥. 탁.

 

        불규칙적으로 타자기를 두드리는 소음이 난잡하게 수혁의 머릿속을 찍어 눌렀다. 거칠다. 능숙하지 못하다. 기물에 대한 애정 혹은 찍어내는 문자에 대한 애착이라고는 추호도 없는 투박한 손놀림임이 분명하다. 이를 깨달았을 때 그의 전신에는 소름이 돋는 불쾌감과 모종의 기시감이 치밀었다. 안경. 안경이 어디에 있지. 흐린 초점에나마 기생해보려 수혁이 맨눈을 한껏 찌푸리자 축 처진 속눈썹이 그늘을 이루었다. 그늘 속 시선에 담긴 것은 이름 모를 뒷모습이었다. 검은 형체에 불과한 존재가 걸음을 재촉했다. 서서히 거리를 좁혀갈 수록 암흑 후편에 가리어져있던 윤곽이 짙어져갔다. 그것은 광명이었고, 말간 황금빛이었다. 아, 안경을 찾아야……. 수혁은 문득 이 낯설고도 낯익은 존재에 외경심을 느꼈고, 외畏와 경敬 중에서는 전자에 더 많은 감정의 무게가 할당되어 있었다. 그는 두려웠다. 두려움의 까닭도 모른 채 두려웠다. 점점 거세고 다급해지는 타자기 소리에 맞추어 수혁의 눈동자 속에서는 너른 어깨가 요동쳤고 뒤이어 찬란한 금발이 일렁였다. 순간 그깟 낡아빠진 안경 따위는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비이성적인 생각이 수혁을 좀먹었다. 흠집난 안경알에는 쉽게 티끌 따위가 나앉았고, 그것을 그보다 오래 쓴 헝겊으로 문지르면 더 쉽게 탁한 얼룩이 번졌다. 수혁은 늘 그렇게 희뿌연 세상과 마주하며 살았다. 그런데 이 금빛 존재는…… 날 것 그 자체였다. 소음은 어느새 수혁의 목을 조르고 있었다. 그가 숨을 가쁘게 헐떡이자 발갛게 물든 목울대가 오르내렸다. 금빛 존재가 거대한 손으로 타자기의 글쇠를 으스러뜨릴 듯이 내리쳤다. 고막을 찢을 듯한 굉음이 울림과 동시에 눈이 시리도록 반짝이는 금빛 잉크가 사방으로 튀어나갔다.

 

        “헉, 허억! 헉… 하억…… 큭. 콜록, 콜록.”

 

        수혁이 눈꺼풀을 젖히며 달뜬 호흡을 토해냈다. 쾅쾅쾅.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반복되었다. 꿈에서 벗어나게 된 원흉이겠지. 어쩐지 미지근한 아쉬움이 남은 것도 같았다. 수혁은 어려서부터 꿈을 꾸어본 적이 없었다. 수면 속에서 맞는 몽마도, 희망하는 자아의 형상도, 그게 어떤 의미의 꿈이든 간에 그와는 거리가 먼 이상일 뿐이었다. 그것은 그가 제 것이 아닌 욕망은 품어본 적이 없다는 것을 뜻하는 것이기도 했다. 그러나 이 꿈은… 어쩌면 안경이라는 도구 없이 세상을 보고 싶다는 생애 동안에 켜켜이 쌓인 욕망일지도 모르겠다. 그 금빛은, 그러니까 그 사람의 금빛은 초점 없는 시야마저 선명하게 장악하는 종류의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일몰처럼 황홀하고 또 불꽃처럼 격렬한 그의 금빛을 떠올리면 또다시 뒷목이 저리고 뱃속이 울렁거렸다. 출처가 묘연한 수치심 탓에 머릿속이 온통 하얗다. 바지의 앞섶에 손을 대자 천에는 약간의 습기가 배어있었고 더 깊숙이 더듬었을 때 손끝에 묻어난 끈적임 탓에 수혁은 급히 손을 빼내고 말았다. 죄를 지은 듯 심장이 쿵쾅댔다. 수혁은 배에서부터 앓는 소리를 끌어내며 땀에 절어버린 제 머리칼을 움켜쥐었다. 쾅쾅쾅. 누군가 다시 문을 두드렸다.

 

        “신 님? 신 님! 일어나주세요. 골든레너드 주인님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예, 지금, 그러니까 아까부터 일어나있었습니다. 그, 금방 나갑니다.”

 

        죄책으로 사무치는 심정을 갈라진 음성으로 애써 덮으며 수혁이 응답했다. 열셋일 때도 겪지 않았던, 서른의 몽색이었다.

 

/

 

        수혁은 어젯밤도 여느 때와 다를 바 없이 구시가지의 카바레에서 독야를 누렸다. 보관해둔 싸구려 술을 홀짝이면서. 그는 가죽으로 된 허물이 헐거워진 수첩을 뒤적이다가도 무언가를 상기해낸 듯한 낯을 하고는 쉼 없이 만년필을 놀렸다. 신수혁이라는 사람은 늘 그랬다. 총명한 수혁에게 삶이 가난했던 그의 부모는 지나치게 많은 것들을 기대했다. 삶이 가난하여 눈이 망가져도, 허리가 시큰거려도, 발톱이 살을 파고들어도 수혁은 텅 빈 양피지 같은 그의 부모에게 아무 것도 기대할 수가 없었다. 열세 살 때부터 몽정이나 첫사랑 대신에 앓기 시작한 고질병을 억지로 품고 산지 십 년이 되었을 무렵이었다. 수혁은 가난한 삶을 쥐어준 부모 밑에서 제 발로 걸어 나왔다. 법학으로 따뜻한 식사를 먹고 살기를 기대했던 부모에게 수혁은 그들이 어려서부터 반대해온 글을 지어 먹고 살겠다고 선언했다. 그가 그들에게 안겨줄 수 있는 것은 검은 머리의 차가운 문학밖에는 없었다. 그때 아들의 몸과 마음이 자신들보다도 더 가난하다는 것을 그의 부모는 깨닫고야 말았다. 자리에서 일어나며 너무나도 작아져버린 식탁에 기어코 무릎을 부딪치고서 미간을 찌푸리는 그들의 아들을 어떤 말로도 붙들어둘 수 없었다.

 

        구시가지의 이름 없는 카바레는 문학의 상징이었다. 문학 학교를 다니는 겉멋이 든 대학생들부터 거장이라고 손꼽히는 소설의 대부들과 그들로부터 글을 배우는 문하생들까지도 드나들었다. 종종 출판사 편집쟁이들이 시치미를 뚝 떼고 앉아서는 거침없이 제 글을 읊어대는 신인들을 스카우트 해간다는 소문도 돌았다. 사람들은 시시때때로 모여 앉아 질 나쁜 종이에 찍힌 활자가 차와 술, 그리고 침방울로 번질 때까지 문학 이야기를 나불거렸다. 부모 몰래 이를 동경했던 미성년의 수혁은 청소부로 일하게 해달라고 사정한 뒤로 카바레를 곧잘 드나들었고 갓 성인이 되어서는 종종 습작시와 산문을 낭송하여 오 프랑, 십 프랑씩 동냥을 받곤 했다. 그러나 수혁은 손에 쥐어지는 동전들보다 귀동냥으로 주워듣는 문학도들의 언어에 더 큰 희열을 느꼈다. 그는 카바레가 살아 숨 쉬는 하나의 세계라고 굳게 믿었다. 카바레는 병마와 다투는 수혁과 동행하며 그의 편이 되어주었고 그 역시도 카바레를 배반할 생각은 추호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때로부터도 십 년이 더 흘렀다. 그동안 카바레는 수많은 이들을 마중하고 배웅하는 기차역의 플랫폼 같은 공간이 되었다. 누군가는 이곳에서 죽음을 맞기도 했으며 타락한 문인들이 호색한들을 끌어들이기도 했다. 이 낡은 세계는 여전히 사람들로 북적거렸지만 카바레의 부흥기를 그리워하는 사람은 이국의 검은 머리 하나뿐이었다. 수혁은 카바레가 노년기의 끝자락에 억지로 매달려 있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었다.

 

        최근의 카바레는 사교장 같은 분위기를 띠었다. 한구석에서는 문학을 사고팔고 그것을 환산한 돈이 오고 가기 바빴다. 수혁은 유능했다. 그러나 그를 알아주는 이들은 없었다. 필명을 사용하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했다. 사람들은 세 음절로 발음되는 낯선 이름자에게 선뜻 손을 내밀지 않았다. 그는 타고난 운도 없었다. 수혁은 매일이 이 카바레의 최후의 밤이라고 여기며 오늘밤은 누군가가 이곳에 기름을 붓고 불을 질러주기를 바랐다. 그리고 어젯밤이라고 다를 것은 없었다. 물론, 그토록 갈망하던 불길 비슷한 것이 실제로 눈앞에 나타났다는 것만 빼면.

 

/

 

        “아직도 심기가 불편해 보이네.”

 

        낯뜨거운 침대 상황과 몸을 갈무리하고 얌전히 놓인 제 옷가지들을 하나씩 꿰어 입은 수혁은 뒷목과 얼굴에 찬물을 끼얹은 채 제가 머무른 방에서 빠져나왔다. 이번엔 잊지 않고 얌전히 놓여있던 안경을 챙겨 썼다. 계단을 밟을 때마다 물방울이 뚝뚝 떨어져 그의 행적을 기록했다. 수혁은 가는 몸을 잘게 떨었다. 그것이 목덜미에서부터 등을 타고 흘러내리는 찬 기운 탓인지, 혹은 계단 아래에서 흥미로운 표정으로 자신을 들여다보는 꼭 이 불길 같은, 금빛의 존재 탓인지는 알아볼 겨를이 없었다. 불이다. 다시 꿈에서 느꼈던 경외심이 치밀기 시작했다. 낯빛에 드러내지는 않았으나 수혁은 두려웠다. 이 사람의 금빛 머리카락과 눈동자 앞에서 안경을 벗으면 제 눈이 멀어버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어 괜히 안경테만 매만지며 그의 앞에 우두커니 멈추어 섰다.

 

/

 

        “왜 그렇게 심기가 불편해?”

 

        정중한 물음도 없는 무례한 태도로 누군가가 카바레의 가장 구석진 곳에 앉은 수혁의 앞자리를 거침없이 차지했다. 머리를 깊게 덮어 얼굴이 보이지 않는 케이프를 뒤집어 쓴 남성. 발음은 현지인. 체구는 크고 음성은 젊었다. 사람 관찰에 이골이 난 수혁은 동요하지 않고 쌀쌀맞게 턱을 돌렸다. 창밖이 흐린 모양새가 곧 밤비가 내릴 것 같았다. 방화가 손쉬울 날씨는 아닐 것 같다는 염세적인 생각만 꼬리를 물던 참이었다. 질문의 주인이 수혁의 코앞에 얼굴을 죽 드밀었고 수혁은 오만 가지의 당혹스러움을 느끼며 몸을 뒤로 젖혔다. 그 순간 수혁은 제 안경에 비친 사람을 응망했다. 살짝 젖혀진 검은 케이프 속에서 금발이 불꽃처럼 흐트러졌다. 동색의 눈동자가 강인하지만 악의 없이 그를 꿰뚫을 듯 바라보고 있었다.

 

        “골든… 레너드.”

 

        “그래. 나야. 그렇지만 미안하게도 그대가 기억하는 사람은 아닐 거야, 작가님. 문학도 죽은 사람은 살릴 수 없어. 나는 볼프강이거든.”

 

        골든레너드는 이름도 얼굴도 없이 숱한 걸작을 발표해내는 문인이었다. 오로지 골든레너드가 금발과 금안을 지녔다는 소문만이 세간에 떠돌았고 사람들은 그를 금빛 축복의 시인이라고 부르며 찬사했다. 이후에 제 필명이자 가문을 딴 출판사를 세운 골든레너드는 이곳 카바레와 상생하며 그 부흥을 추진력으로 삼아 문학계를 사로잡았다. 골든레너드의 금빛 휘장이 자신의 작품에 찍히는 일은 문학인들의 일생일대의 로망이나 다름없는 것이었다. 그러나 악재는 겹친다고, 카바레의 퇴색과 더불어 골든레너드의 갑작스러운 사망 소식이 문단의 침체를 불러왔다. 그리고 아무런 준비도 없이 그의 뒤를 이어 출판업을 물려받게 된 것은 그의 외동아들, 볼프강 골든레너드였다. 볼프강은 아버지의 원인 모를 죽음을 애도했으나 형식이 진심이 될 수는 없음을 알았다. 아주 어릴 적 비쥬bisou, 상대방과 짧게 양쪽 볼을 번갈아 대며 한쪽 볼이 닿을 때마다 입술만으로 입맞춤의 소리를 내는 유럽 국가의 인사법를 나누던 때 이후의 아버지를 볼프강은 상기할 수 없었다. 볼프강은 문학에 대해서도 무지했다. 허황된 이상향을 좇는 행위는 종내에 이성을 가리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상상할 수 없는 영역을 창조하는 것이 가능할 리가 없다며 그는 아버지의 작품을 들추어보기는커녕 자신의 이름에서 골든레너드를 떼어내고 싶어 했다. 늘 금발과 금안을 가리는 검은 케이프를 두르고 자신을 소개할 때는 볼프강이라는 이름만을 내세웠다. 미숙한 볼프강 덕에 삐걱대는 출판업이 제대로 굴러갈 리가 만무했다. 이 카바레에 서성이게 된 것은 순전히 아버지를 돕던 율리시즈 공작의 요구였다. 카바레에는 여전히 재목이 남아있을 것이라고 믿는 그의 유토피아적 사고를 이해할 수 없었지만 존경하는 친구를 잃은 큰 어른을 자극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그리고 볼프강은 그곳에서 단번에 재목이라고 부를 만한 이가 누구인지 알아볼 수 있었다.

 

        아마 누구라도 그랬을 것이다. 형형색색으로 치장한 사람들 틈에서 어두운, 곧 폭발할 신생의 우주 같은 기운이 느껴지는 사람을 보게 된다면 누구라도 고개를 치켜들게 될 것이 분명했다. 볼프강은 오래도록 같은 자리에 발을 붙이고 서서 그를 지켜보았다. 자신을 조금도 드러내지 않겠다는 듯 이곳에서는 유일하게 안경 너머로 허공을 방랑하는 이국적인 동방의 남자다. 곧 필라멘트가 끊어질 것 같은 전구 불빛 아래에서 그가 고개를 나긋하게 돌릴 때마다 볼프강은 짙푸른 바다에 잠겼다가도 금세 무중력 상태의 새카만 우주를 유영하는 기분이 들었다. 그는 수혁을 제 무엇으로 삼을 수 있을지 고민했다. 그 고민은 그리 길지 않았다. 직접 물어보는 편이 훨씬 빨랐고 훨씬 자신다웠다.

 

/

 

        “……저는 글에 썩 대단한 철학을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닙니다. 정식으로 배운 적도 없어요.”

 

        “문학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데?”

 

        골든레너드의 자제라는 이유만으로 이토록 어처구니없이 쉽게 경계가 허물어지는 것에 볼프강은 씁쓸한 허망함을 느꼈으나 동시에 생애 처음으로 아버지에게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술잔이 오고 가는 동안 대화는 멎었다가 재개되기를 반복했다. 수혁은 문학의 본질에 대해 날 것의 질문을 던지는 이 볼프강이라는 사람 탓에 혼이 나갈 지경이었다. 침착한 체를 하느라 입술에 경련이 났다. 덕분에 자제하지도 거절하지도 못하고 하염없이 잔을 채웠다. 얼마나 마셨는지도 모를 술은 더 이상 핑곗거리가 되지 못하였다.

 

        “주인이…… 되는 것…… 입니다.”

 

        수혁은 결국 무작정 만들어낸 답안을 뱉어버리고 그대로 제 팔에 얼굴을 묻었다. 장작을 충분히 채워둔 벽난로에 불을 때고 그 앞에 머리를 두고 잠에 드는 것처럼 온몸에 열이 돌았다. 오랜만의 깊은 잠이었다.

 

        자정을 훌쩍 넘긴 시각이었다. 은밀한 대화를 나누던 연인들도 하나둘 씩 밖으로 빠져나갔다. 볼프강은 카바레에 한 사람도 남아 있지 않을 때까지 앉아 고요하게 잠든 수혁을 감상했다. 문학이란……. 난생 처음 상정해보는 진리에 대한 고찰이 우스워서 볼프강은 멋쩍은 웃음을 흘렸다. 다시 수혁의 바다에는 파랑이 일렁거렸다. 안경 뒤의 눈을 찌르는 머리카락을 넘겨주자 이번에는 수혁의 우주의 공허함이 볼프강에게 스며들었다. 아, 나는 너를 데려가야겠다. 볼프강은 그런 충동에 스스로를 떠넘겼다. 그를 안아들고 마차를 태우고 저택에 다다라 가장 따뜻한 침실에 누이고 손수 안경을 벗기고 옷을 갈아입히는 동안 아무도 볼프강을 말리지 않았고 아무도 볼프강에게 무언가를 질문하지 않았다. 창밖의 흐린 달의 자국이 뺨에, 그리고 감은 맨눈꺼풀 위에 머물렀다.

 

        “아니야 신 작가님. 아무래도 그대가 틀렸어.”

 

        왠지 모르게 입을 맞추고 싶다는 충동에 지지 않은 것은 정말 다행스러웠다.

 

/

 

        볼프강은 이제 막 잠기운을 떨쳐낸 수혁에게 다짜고짜 패트런이 되어주겠다고 했다. 볼프강은 제 패기어린 말 뒤에 메디치 가문의 후원을 받은 미켈란젤로의 성공적인 삶과 생애동안에 그려낸 구백여 점의 작품 중 단 한 점만을 팔았던 지독히도 고독했던 반 고흐의 삶도 더불어 끼워 넣었다. 치기가 흠뻑 묻어나는 짓을 벌이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기에 볼프강은 머릿속으로 여러 가지 명분을 덧대느라 분주했다. 오묘한 표정으로 망설이는 듯한 수혁에게 볼프강은 조금의 거절의 여지도 남기고 싶지 않았다.

 

        “주인을 찾고 있던 거 아니었어? 신 작가님이 쓴 문학의 주인.”

 

        “하지만 골든레너드 님―.”

 

        “한 달에 5만 프랑으로 시작하자. 그대에게 필요한 모든 자재는 당장 준비해줄게. 우선 타자기를 맞춤으로 제작해줄까. 최고급 종이, 잉크, 만년필만 쓸 수 있도록 해줄게. 먹여주고, 입혀주고, 재워주고, 씻겨주고. 내가 다 해줄게. 딱딱한 빵 귀퉁이 대신에 막 끓인 수프를 먹게 해줄게. 내가 가진 가장 좋은 옷감으로 그대의 옷을 지어줄 거야. 매일 오늘 일어난 그 방에서 머물게 될 거고, 그것도 싫으면 내 방에서 함께 자도록 해. 그대가 귀가하기 전에는 항상 따뜻한 목욕물을 받아두라고 해둘게. 혹시라도 병원에 가야해? 양피지에 손만 베이기라도 하면 말해. 아, 네 안경다리도 고쳐줄 수 있어. 곧 부러질 것 같던데. 그러니까, 내가 무엇이든 해줄게. 내가 그대의 문학의 주인이 될게.”

 

        “…….”

 

        “신 작가님?”

 

        처음에는 예상을 완벽하게 빗겨나간 어마어마한 액수가 귀를 의심하게 했다. 그 이후에는 제가 무엇이라고 저 사람은 저렇게 애달픈 얼굴을 하고 호소하는 것인지 의문이 들었다. 수혁은 저도 모르게 시선을 피하고 말았다. 이 사람은 불이다. 어쩌면 제가 그토록 기다려온 불씨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저는 무엇을 하면 되는 겁니까.”

 

        “당연히 그대는 그대의 일을 해. 쓰고 싶은 글을 쓰면 돼. 그게 시가 되었건, 소설이 되었건, 희곡이 되었건 아무 상관없어. 심지어 나에게 작품을 보여줄 필요도 없어. 나는 문학엔 추호도 관심이 없거든. 대신 조건 몇 가지만 지켜주면 돼.”

 

        “무엇입니까.”

 

        “첫째, 매일 아침 식사를 함께 한다. 둘째, 내 질문에는 거짓 없이 대답한다. 셋째, 매일 나와 삼십 분 이상 대화한다. 대화 시간과 장소는 내가 결정하겠지만 그대에게 무리가 가게 하지는 않을 거니까 걱정 마.”

 

        “그렇다면 저도 조건을 몇 가지 걸어도 괜찮겠습니까?”

 

        “그래, 뭐든 말해 봐.”

 

        “첫째, 돈은 매월 이십이 일에 지불해주세요. 그러니까 오늘 바로 후원금을 주셨으면 좋겠다는 이야깁니다. 둘째, 호칭은 신, 이라고 불러주시는 거면 됩니다. 저는 당신을 주인으로 모실 테니까요. 마지막으로.”

 

        해서는 안 될 말인가. 수혁은 여전히 망설임이 짙었다. 물론 그것은 다른 종류의 망설임이었다. 이를테면 난생 처음 가져본 온전히 나를 위해 존재하는 것들에 대한 욕망, 사람에 대한 욕심 혹은 미련 같은 것들. 부모에게서 단 한 순간도 기대해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보지 않았던 것들. 이런 것들을 제 손에 움켜쥐어도 되는 것인지, 수혁은 여전히 두려움을 폐기하지 못 했다. 줄곧 발밑에 고인 물에 두고 있던 시선을 들자 순식간에 마주 얽혀오는 시선이 있었다. 그가 원했든 원하지 않았든 혈자리를 따라 전승되고야 말았을 이 금빛 축복에 잠식될 것 같다. 볼프강은 어느 샌가부터 웃고 있었다. 이 사람은 줄곧 나를 보고 있었구나. 수혁이 턱 밑까지 차오른 숨을 간신히 삼켰다.

 

        “마지막으로?”

 

        “마지막으로…… 제가 글을 쓸 때에는 때때로 당신이 제 주위에 계셨으면 좋겠습니다.”

 

        언어를 곱씹으면 띄어쓰기와 쉼표와 온점마다 열망이 들끓어 올랐다. 볼프강을 대면할 때면 수혁은 뒷목이 저릿한 감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누구든 직접 골든레너드를, 볼프강을 만났다면 당장에라도 금빛 축복을 금빛 고문으로 바꾸어 부르자고 했을 것이었다. 볼프강이 눈을 끔뻑이다가 나른한 웃음을 터뜨렸다. 그가 가뜩이나 달아오른 수혁의 뒷목을 손가락 끝으로 누르듯 감싸 쥐었다. 수혁은 몸을 움찔 떨었다. 볼프강의 곧은 손마디가 스치는 곳마다 저리다 못해 뻐근해져서 수혁은 황급히 그의 손을 끌어내렸다. 어쩐지 후회스러운 행동이었다. “그, 으런 불온한 마음 아닙니다. 오해하지 마세요,”라는 말을 굳이 매달고 나서는 조금 더 후회했을지도 모르겠다.

 

        “오만하구나, 신은. 아니면 담대한 거야?”

 

        “글쎄요. 그러니까 저를 견디세요. 어찌 되었든 주인께서 택한 저는 그런 사람이니까요.”

 

        “좋아. 그럼 아침 식사부터 하러 갈까?”

 

        온통 농담조로 무장한 볼프강이 제 머리빛깔만큼이나 훤하게 웃어보이고는 성큼 앞장섰다. 수혁은 아버지의 부재 그 이후에 맞닥뜨린 최초의 안식이었다. 반면 수혁의 마음 한 구석에는 여전히 두려움이 몸을 웅크리고 있었다. 그는 계약마저 싱거운 농담으로 치부될 것 같은 기분을 떨쳐내려 고개를 세차게 저어내고는 볼프강의 뒤를 따랐다. 그는 앞서가는 이의 열감이 스민 목덜미를 느리게 문지르며 그 낯선 온도에 적응하지 못한 채 쓴웃음을 지었다.

 

/

 

 été

 

        수혁과 볼프강은 자주 카바레를 찾곤 했다. 마땅한 장소를 물색하지 못 하기도 했고 수혁은 카바레에 대한 미련을 거두지 못했으며 볼프강은 수혁을 처음 만났던 그 장소를 귀하게 여겼기 때문이었다. 볼프강이 내건 세 번째 조건을 이행해야 한다는 것이 명분이었다. 물론 삼십 분이라는 시간의 최하한선은 큰 의미를 가지지 못 했다. 늘 어딘가 침체된 시와 단편소설들을 기계적으로 뽑아내던 수혁은 볼프강을 만나고부터 장편소설에 손을 뻗었다. 수혁이 정신없이 타자기의 종소리를 연주하고 있는 시간을 제외하면 두 사람은 대부분의 시간을 함께 카바레에서 보냈다. 다만 두 사람이 함께 문을 밀고 드나드는 일은 없었다. 늘상 볼프강이 조금 늦게 다다르고, 조금 이르게 돌아가는 식이었다. 술과 요깃거리의 값을 지불하는 것 역시도 매번 그였다. 한사코 패트런으로서의 책임감과 사명감을 내세우는 바람에 수혁도 거절 의사를 무를 수밖에 없었다. 억지로 매듭을 지어두고 인연임을 주장하는 일을 벌였으면서도 둘은 늘 우연한 재회인 체하는 일종의 연극을 즐겼다. 그들의 희곡은 즉흥 이인극, 등장인물은 무명의 고독한 동국 소설가 신수혁과 그런 그에게 흥미를 붙인 부유한 패트런 볼프강뿐이었다. 동명의 인물을 연기하는 두 배우는 매번 올리는 극마다 새로운 대사를 읊조렸으며 늘 진지하게 극에 몰입했다. 지켜보는 관객은 없을수록 좋았다. 몇 없는 관객에 야생적인 금발에 입을 다물지 못하는 퇴보한 문학도들이 없다면 더 좋았다. 덕분에 늙어가는 카바레에서 볼프강은 거추장스럽고 더운 케이프를 벗어던지는 일이 잦아졌고 그것은 당사자를 즐겁게 했지만 어쩐지 수혁은 서러워지기 일쑤였다. 원치 않았음에도 금빛 축복은 더 이상 통용되지 않는 언어임을 확인받는 것 같았다.

 

        연극은 한 사람이 지쳐 나가떨어질 때쯤에야 막을 내렸다. 첫 공연은 시시콜콜한 질의응답의 나열이었다. 한 쪽이 “이름은? 필명은 안 써?”하고 물으면 “신수혁이 본명입니다. 필명은 생각 안 해봤습니다.” 하고 답하는 식이었다.

 

        “나이는?” “내년이면 서른한 살입니다.” “나보다 많잖아? 몰랐어. 그럼 가족들은?” “그 이야긴 하고 싶지 않아요. 이 답에도 거짓은 없습니다.” “좋아, 지나치게 똑똑한 널 화나게 하고 싶지는 않거든. 우리나라 말은 어디서 배웠나?” “아버지 어머니께서 이민 오셔서 저를 낳으셨습니다. 어려서부터 동국과 이 나라의 언어를 함께 사용했어요.” “학교는?” “법학 대학을 다니다 중퇴했습니다.” “문학하려고?” “예, 문학을, 해보려고요.” “응, 잘했어.” “예?” ……. 이런 대화들이 이어졌다.

 

        볼프강은 짓궂은 물음표를 찍는 것을 즐겼다. 때때로는 적잖이 당혹스러운 애드리브에도 수혁은 꿋꿋이 역할에 충실했다. 볼프강의 무례함은 서툴게 포장한 다정함 같은 것이었다. 가끔 진땀을 빼긴 해도 수혁은 그것이 싫지만은 않았다. 하루는 영감을 어디서 어떻게 얻느냐는 물음에 대충 주인께서 넉넉히 챙겨주시는 덕에 영화를 보러 다닌다는 말 따위로 얼버무리자 볼프강은 그곳을 집요하게도 파고들었다. 사랑에 대해서는 경험해보지 않고서 어떻게 제대로 표현할 수 있느냐고 캐묻는 식이었다. 친구의 조언을 구한다는 임기응변식의 답변에는 “신 작가, 친구가 있었어?”하는 유치한 장난이 섞인 조롱을 받았을 뿐이었다.

 

        “신, 그럼 연애는 해봤어?”

 

        “안 해보았을 거라고 생각하시는 겁니까?”

 

        “그야, 물론. 놀리는 거 아니야. 나는 연애 안 해봤거든.”

 

        “예? 거짓 같은데요. 어찌되었든 여전히 무례하시군요. 경험은 있습니다. 법학 대학에 다니던 때에, 두 번이요. 같은 학교의 여학우들이었고 저보다 나이가 많은 쪽도, 적은 쪽도 있었습니다. 말씀드리기 부끄럽지만 만남의 제의도 이별의 통보도 늘 제가 수용하는 쪽이었습니다. 연유를 묻고 싶지도 물어본 적도 없었지만 아마 제가 신비주의가 아니라 고리타분한 인간임을 뒤늦게 알아차린 것이었겠죠. 자, 궁금해 하실 것 같은 건 제가 미리 다 답해드린 것 같은데요.”

 

        “그럼 지금은? 애인이 있어?”

 

        여느 때보다 진지한 모양새를 한 금안이 수혁을 제 안에 정성스럽게 새겨 넣고 있었다. 애인, 애인이라. 사랑하는 사람. 서로 사랑하는 사이. 그렇다면 한 쪽만 사랑하는 사람은 무어라고 부르지? 그것도 애인이라고 할 수 있나? 애초에 사랑하는 것이 무엇이지? 오래 은폐했던 두려움이 고개를 드는 것을 느낀 수혁은 안경을 고쳐 쓰는 시늉을 하며 고개를 돌렸다. 제 턱없이 비좁은 인간관계의 틀을 모를 리 없는 사람이 무엇이 더 확인받고 싶어 건넨 물음인지 모르겠다. 왠지 원망스러운 마음에 술잔 바닥에 찰랑거리는 술을 입에 마저 털어 넣고 그는 다시 입을 열었다.

 

        “없겠죠. 없습니다.”

 

        “그럼 신, 너는 네 지나간 애인들을 사랑했어?”

 

        폭풍우처럼 몰아치는 질의에 예, 그럼요, 라는 아무렇지도 않은 답을 내뱉어야 했는데 말이 편히 떨어지지 않았다. 당시에 사랑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분명 사랑했다. 사랑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 와서 철이 지나버린 사랑의 정의가 수혁을 번뇌에 빠뜨렸다. 수혁은 볼프강에게 거짓을 말해서는 안 되었다. 습관처럼 스스로의 뒷목을 매만지며 수혁은 마땅한 답안을 찾아 헤맸다. 할 수만 있다면 볼프강에게 되묻고 싶었다. 그리고 그런 생각으로만 그쳤어야 하는 것이 입 밖으로 튀어나오면 사람에게 남은 선택지는 얼마 없었다. 말을 무르고 결례를 사과하거나 아예 검열도 여과도 가감도 없이 고인 물을 청소하듯 남아있는 말들을 마저 쏟아내는 것.

 

        “무엇입니까?”

 

        “뭐가?”

 

        사랑 말입니다, 하는 수혁의 말에 볼프강은 얼굴에 만족스러운 소태를 그렸다. 신이 나한테 처음 질문하는 건데, 글쎄, 아쉽게도 나는 연애 안 해봐서 답을 못 주겠다. 신이 모르는데 내가 어떻게 알겠어. 고민은 신이 해야지. 자리에서 일어나 느긋하게 케이프를 뒤집어쓰며 볼프강이 카바레를 나서기 직전 그런 말들을 했던 것 같다. 그리고 그보다 더 직전에는 수혁의 뺨 위에 좀처럼 익숙해지지 않는 낯선 온도가 머물렀던 것도 같다. 비쥬, 라는 말과 함께였다. 수혁은 그가 홀연히 빠져나간 문을 넋이 나간 듯 응시하며 한없이 자신을 동요케 하는 그에 대해 생각했다. 복합적인 감정이었다. 왜 그런 어린아이들에게나 하는 단어를 사용했는지. 왜 다 자란 성인 남성에게 이런 인사를 건넨 것인지. 왜 제 뺨에 닿은 것이 상대의 뺨이 아닌 입술이었는지. 늘 처음이 어려운 법이었다. 수혁이 꺼내놓은 첫 질문에는 답변이 달리는 대신 열 개도 넘는 질문이 꼬리를 물었다. 궁금했다. 수혁은 볼프강의 생각이 궁금해졌다. 질문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때마다 수혁은 소설 작업에 몰두함으로써 이를 회피했다. 작품은 빠르게 살이 덧입혀지고 있었다. 이인극의 역할을 교환할 계절이 도래하고 있음을 수혁은 직감했다.

 

/

 

automne

 

        수혁은 평생의 고질병들 외의 잔병치레를 겪는 일이 거의 없었다. 본인이 겪는 고통의 질량을 바깥으로 호소하는 일도 없었다. 대신 그는 일 년 중 유일하게 추수 때가 되면 몸이 성치 않다는 걸 구순을 제외한 전신으로 토로했다. 이 시기가 되면 앉는 자리가 불편하여 허리가 남아나질 않고, 절반을 메운 작품의 작업 속도는 더뎌지고, 카바레에 직접 불을 지르고 싶은 충동이 매일같이 일어났다. 카바레의 음식도 풍성하고 신선해지는 그 시기만큼은 수혁은 그곳에 발을 들이지 않았다. 실망감이 미련을 이겨먹는 일을 자처하고 싶지는 않았다. 이를 조롱하듯이 카바레에서는 추수감사절 사교 연회가 조잡하게 열리곤 했다. 연회를 표방한 젊은이들의 문란하고 교양 없는 노름일 뿐이었지만.

 

        탈곡되는 작물처럼 수혁이 심신의 방황을 겪는 동안 볼프강은 자신이 이끌어 나가야 할 일에 박차를 가했다. 내년 이맘때쯤 수혁의 새 작품이 발표되면 볼프강을 수장으로 둔 골든레너드 출판도 다시 크게 이목을 끌게 될 것임이 분명했다. 아귀가 꼭 들어맞는 톱니바퀴를 찾은 것만 같았다. 볼프강은 매일 수혁과 더 오랜 시간 대화하고 싶었다. 골든레너드를 떼어둔 채 수혁 없이 살았던 시간이 좀처럼 기억나질 않게 되었다. 그러나 수혁이 좀처럼 카바레에 가지 않겠다고 주장한 이후부터 일일 삼십 분의 대화는 간신히 조항을 어기지 않을 정도로만 유지되었다. 볼프강은 그것이 타자기의 먹 묻은 활자가 종이에 글을 찍어대는 횟수보다 수혁이 버리고 갈아 끼우는 종잇장의 수가 더 많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예술가의 숙명에 대해 인정하며 수혁을, 수혁의 세계를 이해해보려고 애썼다. 작업 중이던 수혁이 방으로 자신을 부르면 아무 말이 오가지 않아도 기뻤고 그 적막의 시간동안 볼프강은 수혁이 세상에 내어놓은 작품집들을 모조리 탐독했다. 팔리지 않아 초판 이후로 인쇄되지 않은 것들뿐이었지만 아버지의 서재에서만큼은 수혁의 책들을 쉽게 찾을 수 있었다. 생애 두 번째로 아버지에게 감사한 순간이었다.

 

        글을 쓰는 수혁은 언어의 무게를 알았다. 함부로, 허물없이 입을 열었다가는 그동안 묵혀왔던 카바레에 대한 원망의 불똥이 볼프강에게 옮겨 붙을 것 같아 그를 독대하는 매순간 새로운 종류의 두려움이 하나둘 씩 늘어갔다. 작품의 주인은 곧 자신의 주인, 그 한없이 다정한 사람을 해하고 싶지 않았다. 조금도 글을 불리지 않고 있으면서 수혁은 작품을 쓰기 바쁘다는 핑계로 볼프강과의 대화에서부터 도망쳐 다니기 바빴다. 가을이 절정에 이르러 괴로운 낯과 부끄러운 행태들을 감추는 것조차 어려워졌을 때에는 집중이 어렵다는 핑계로 그를 작업 중에도 더 이상 불러들이지 않았다. 그러나 볼프강은 성정이 집요했다. 가히 자비로운 사람은 아니었으나 수혁을 인내할 수 있었다. 후원자와 피후원자의 관계를 지켜보는 눈이 많아 정갈하고도 무방비한 조식 시간을 노려 말을 붙였고 잠시나마 수혁을 제 방에 붙들어둘 수 있었다. 곤란한 표정의 수혁이 제 앞에 안쓰럽게 서있었다. 삼십 대에 접어드는 남성의 몸치고는 여리고 가는 것이 한 눈에 들어왔다.

 

        “지금의 카바레는 낡아빠졌어요. 내가 기억하는 공간은 과거에 완전히 고립되어버렸습니다! 그렇지만 나에게는 여전히 카바레가 필요해요. 그런데, 그렇지만…….”

 

        볼프강은 짐짓 진지한 낯으로 수혁에게 모든 언행의 연유를 물었고 수혁은 스스로가 생각해도 어리석은 언행을 봇물처럼 터뜨렸다. 어린 면모를 드러내는 것이 부끄러워 얼굴을 감싸 쥔 그의 몸이 바들거렸다. 입술을 감쳐물어 울음이 새어나오지 않은 것이 다행스러울 정도였다. 제 유일한 문학적 안식처였던 카바레가 사치로 풍성해질수록 수혁의 몸과 마음에는 허기가 져갔다. 껍데기뿐인 카바레에서 살아가는 대신에 굶주리며 수혁은 매일 같이 죽어가고 있었다. 볼프강은 제 다락이 되어준 수혁에게도 다락방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마음이 저린 것은 수혁뿐만이 아니었다. 볼프강의 투박한 손은 타자기를 두드리는 데에는 맞지 않았지만 그 일에 평생을 내건 사람의 손을 붙들어줄 수 있었고 작은 어깨를 감싸 안아줄 수 있었다. 수혁이 입을 틀어막고 숨을 삼켰다. 둘은 한참이나 그렇게 말없이 몸을 부대끼며 서 있었다.

 

        “신, 걱정하지 마. 나는… 구원에게도 구원이, 신에게도 신이 필요하다고 생각해.”

 

        볼프강의 말끝에 감싸 안은 어깨가 미약하게 들썩였다.

 

/

 

        볼프강은 수혁에게 아버지의 서재를 사용할 것을 제안하였으나 그는 손과 머리를 내저으며 거절했다. 그 대신으로 사용인들에게 오래 방치된 낡은 다락방을 청소할 것을 부탁하였고 그곳에 아버지가 소장하던 책들 가운데 수혁이 눈을 빛내던 것들을 골라 진열했다. 지겨운 가을동안 볼프강은 아버지의 찬양받는 작품들을 억지로 집어 들었다. 문학에 굶주린 수혁의 이야기를 듣고 미숙한 비평을 해주기 위해서이기도 했지만 저도 무언가 질적인 양식을 나누어주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볼프강은 부쩍 수혁의 좁지만 아늑한 다락방에 찾아가는 일이 많았다. 그곳에서는 걸리적거리는 케이프를 두르지 않아도 괜찮았다. 아무도 그들을 찾을 수 없는 두 사람의 세계였다. 그는 다락방 귀퉁이에 생긴 거미줄을 긁어내거나 등불의 초를 갈아주는 일도 마다하지 않았다. 카바레에서 이인극을 벌이는 일보다 좋아하는 것이라면 수혁의 낮은 다락에서 허리를 굽히고 등불에만 의존하여 한참동안이나 대화를 나누다가도, 타자기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낡은 매트릭스 위에서 잠에 드는 일이었다. 밤이 깊어갈 무렵 고개를 든 수혁은 미소를 지으며 잠든 금빛 머리카락을 결에 따라 쓸어내렸다. 더 이상은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나의 축복. 그러나 내가 기억하는 나의 언어. 이제는 열셋에 채 다 부리지 못한 어리광을 부려도 용서받을 수 있었다. 변해가는 문체도 내면의 감정의 발설도 전부 볼프강 골든레너드에 의한 것이었다.

 

        “제가 가지고 있었던 것은 외경이 아니라… 동경인 것 같습니다.”

 

        “…….”

 

        “나의 시에 온통 당신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나의 시는 전부 당신의 것입니다.”

 

        당신을 위해서라면 어떤 문학이라도 써 보이겠다고, 수혁은 잠든 금빛의 앞에서 맹세했다.

 

/

 

hiver

 

        볼프강을 자신의 뮤즈로 섬기게 된 이후로 수혁은 이전보다 더 볼프강을 갈구했다. 인생의 삼 할 가까운 세월이 지난 뒤 처음으로 혀를 대어본 욕망이 이토록 달아서 수혁은 약에 취한 이처럼 행복하고 괴로웠다. 수혁이 써내려간 영웅도, 현자도, 장군도 모두 볼프강의 면모를 닮아있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늘 쉽게 써내지 못 하는 것이 있었다. 연인이었다. 연인을 묘사할 때 그는 볼프강의 곁에 선 다정한 연인의 실루엣을 상상하였지만 떠올리는 피사체마다 마음속에서 흩어져버려 좀처럼 그려지지가 않았다. 볼프강에게 연인에 대해 물으면 그는 늘 경험이 없다며 웃어넘겼고 이상형을 물어도 볼프강은 의미 없는 외관들을 몇 가지 나열해둘 뿐이었다. 사소한 외면은 섭섭함이 되었고 그사이 어느새 눈발이 날리는 겨울이 찾아왔다. 섭섭함은 열셋의 어린아이가 눈 속에서 굴려낸 눈덩이처럼 빠르게 불어났다.

 

        볼프강은 언제나 수혁의 곁에 있어주고 싶었다. 일찌감치 이것이 단순한 친애가 아닌 것쯤은 알아차렸다. 자신에게 사랑과 연인에 대해 묻는 수혁이 원망스러웠다. 그 무엇도 수혁을 가리키지 않는 것이 없었지만 자신이 폐가 되고 싶지 않았다. 자신의 진심은 후원자가 몰두하는 작품을 시커먼 잉크 속에 담가버리는 일이라고 여겼고 그것은 자살 행위나 다름이 없었다. 그렇기에 그는 수혁과의 약속을 지키지 않는 일이 잦아졌다. 대신 수혁이 원하는 답을 내어주기 위해 볼프강은 머리를 비운 채 거리를 배회하고 수혁 대신 지저분한 카바레를 드나들며 짤막한 유흥을 즐기고 싶어 하는 이들의 장단에 맞추어주곤 했다.

 

        케이프를 두른 금안의 남자는 조금만 더 턱을 기울이면 입술이 맞닿을 거리에 서있는 눈앞의 남자를 공허하게 응시했다. 그때 누군가 카바레 문을 박차고 들어와 골든레너드 님을, 또 신수혁 님을 미친 사람처럼 외쳐대기 시작했다. 케이프를 두른 남자가 이름에 반응했고 사람들의 웅성거림을 뒤로한 채 카바레를 박차고 나갔다. 머리를 덮은 천이 뒤로 흘러내리고 채 닫히지 못한 문 너머의 거센 눈보라 속에서 금발이 부서질 듯 흩날렸다.

 

/

 

        “돌아오셨네요.”

 

        고갤 돌려보지도 않고 인사를 건넸다. 난롯불 앞에 무릎을 싸안고 앉아있는 수혁의 눈가가 불길 탓에 더욱 벌겋게 보였다. 눈에 축축이 절은 볼프강은 수혁과 난롯불 속에서 타들어가고 있는 그의 원고를 번갈아 살피며 상황을 애써 납득해보려 했다. 미간이 일그러졌다. 수혁은 제가 어디까지 인내할 수 있는지를 여러모로 시험하는 것 같았다.

 

        “그게, 할 말이야? 신, 이게 지금 뭐하는 짓이야?”

 

        “제가… 약속을 꼭 지켜달라고 그렇게 사정 드리지 않았었나요.”

 

        “신, 무릎이라도 꿇을까, 신? 말해봐. 내가 어떻게 할까?”

 

        “이미 늦으셨다는 걸 잘 아시잖아요! 저는 제 모든 원고를 다 태웠어요. 저는 더 이상 문학을 할 수 없어요. 이제 전 무력하고 아무 것도 없는 빈껍데기일 뿐입니다! 저희의 계약에 분명히 제가 부탁드린 약속도 담겨 있지 않았습니까! 왜, 왜 그건 지켜주시지 않는 거예요, 도통! 제가 늘 함께 있어달라고 했습니까? 매일, 매순간 절 바라봐달라고 무리하게 요구했나요? 아니, 애초에 제 부탁을 몇 번 들어주셨는지 기억은 하시나요?”

 

        “신!”

 

        “제 말을 끝까지 들으세요! 하찮은 제 이야기는, 절반도 듣고 싶지 않으신 거지요! 글이 나오질 않았어요. 사랑, 연인, 당신에게 시시하게 여겨졌을 그런 것들이 저를 막아 세웠습니다. 저도 그 까닭을 알 수가 없어 속이 타들어갔는데, 당신까지 저를 지지하지 않으면 저는―.”

 

        사랑해, 신. 볼프강은 이제야 수혁에게 늦은 답안을 제출했다. 이명이 울렸다. 세상이 멈춘 듯 했다. 여과 없이 드러난 볼프강의 진심에 수혁은 심장 한 켠이 으스러지는 것을 느꼈다. 애써 회피해온 무언가를 깨닫게 된 것 같았다. 한없이 이기적이고 독선적이고 무례한 것은 자기 자신이었다. 나는 내가 내킬 때 볼프강을 부른 것이고 내키지 않으면 그에게 아무 것도 드러내고 싶어 하지 않았다. 거짓을 말하는 일은 없다고 생각했는데 약속을 어기는 쪽은 늘 나였다. 나는 언제나 거짓말을 하고 있었다. 나 자신에게조차. 이것은… 외경도, 동경도 아닌 사랑이었구나. 그의 옆에 그려 넣고 싶은 것은 다른 누구도 아닌 나 자신이었구나. 겉돌던 감정을 인정하고 나자 걷잡을 수 없이 눈물이 쏟아졌다. 유독 당신 앞에서는 모든 걸 꿰뚫리는 듯 허위를 연기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왜 항상 뒤늦게 후회하는지 모르겠다.

 

        “널 사랑해. 그게 내 대답이었어. 잉크를 부어버리지 않고 싶었는데, 네가 먼저 그것을 불길에 던져버렸구나. 그리고 널 그렇게 하게 만든 건 나겠지. 미안해, 내 탓이야.”

 

        “…….”

 

        등을 돌리던 금빛이 다시 수혁을 바라보고는 희미하고 안타깝게 웃었다.

 

        “있지, 신. 내가 네 카바레가 되어주고 싶었어.”

 

/

 

        언제 잠에 들었는지도 모르겠다. 상처 입은 쓴 웃음을 짓고 돌아선 볼프강의 뒤에서 수혁은 한참을 울다 지쳐 쓰러졌던 것 같다. 그는 다락방의 볼프강의 체향이 머무는 낡은 매트리스 위에서 웅크리고 있던 자신을 발견했다. 수혁이 새벽녘에 꾼 악몽 속에서 볼프강은 자신의 제외하고도 수많은 후원자들을 두고 있었다. 수혁은 아직 결말을 맺기에 이르다고 생각했다. 볼프강의 답안지 속에는 자신만이 퇴고하여 채워 넣을 수 있는 반전이 있다고 믿었다. 수혁은 미친 듯이 카바레를 향해 달려 나갔다. 안경도 걸치지 않은 채였다. 카바레의 내부에는 새벽의 밀회를 나누는 남녀들이 있었다. 수혁을 향해 추파를 던지는 이들도 있었다. 그러나 수혁은 눈과 귀가 먼 사람처럼 사방을 살폈다. 그가 찾는 것은 오로지… 잘 다듬은 양피지 같은 금빛 머릿결과, 눈동자와….

 

        “……신?”

 

        짓궂고도 다정한 음성과….

 

        “신수혁!”

 

        “볼, 프강, 님.”

 

        이미 나를 용서하기라도 한 듯한, 아니 애초에 언제 화가 났었냐는 듯 나를 착각하게 만드는, 그래서 더 비겁하게 느껴지는. 나를 그러쥐는 사랑해 마지않는 당신의 온도.

 

        “멀쩡히 대화를 나누기에는 너무 늦은 시간인데. 네 상태를 봐서도 영 무리야. 돌아가자.”

 

        “사랑, 하는 것 같습니다. 사랑합니다.”

 

        잠시 아둔해졌던 볼프강은 허리를 끌어당겨 충동적으로 입술을 부딪쳤다. 콧대 높으신 사랑하는 나의 문학도, 나의 신수혁이 자존심을 다 버리고 자신에게 매달리는 모습이 낯설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그냥 그 모습이 조금 많이 사랑스러웠을지도 모르겠다. 벌어진 입술 사이의 틈으로 한숨을 내뱉으려던 차에 호흡 외에도 여러 가지가 뒤섞여 들어왔다. 아, 이제는 도무지 모르겠다. 한참이나 수혁을 끌어안고 또 제가 입을 맞추었던 뺨을 감싸 쥐고 키스를 나누었던 것 같다. 먼저 입술을 떼어내고 어깨에 고개를 묻은 채 익은 숨을 몰아쉬던 수혁이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열이 오른 귀와 이마, 울음 탓에 붉어진 코끝과 눈가, 그와 대비되도록 창백한 낯빛과 잉크를 짙게 흩뿌린 듯 흐트러진 머리카락, 깊게 내려앉은 눈 아래의 그늘. 안경 없이도 명확하게 자신을 바라보는 우주를 담은 두 눈. 찰나에도 각인된 것처럼 빠짐없이 눈에 담겼다. 볼프강은 그제야 흡족한 웃음을 지었다. 작품 같은 건 아무래도 좋았다.

 

        “거봐. 정상적인 대화는 불가능할 것 같다고 했잖아, 내가.”

 

        “골든레너드 님, 혹시 저 이외에도… 다른 작가들을 후원하고 계십니까.”

 

        “그럴 리가 없잖아. 난 문학이라고는 아무 것도 모르는 사람이었다고.”

 

        “그렇다면 혹시 연인이 생기셨습니까.”

 

        “신, 그럴 리가 없잖아!”

 

        “……송구합니다.”

 

        “신, 사과는 필요 없어. 대신에 우리가 처음 카바레에서 만난 그날, 내가 그대를 선택하지 않을 수밖에 없게 만들었던 그날 그대의 날선 눈빛을 나는 기억해. 기억하니까, 그러니까 나를 그대의 문학으로 삼아. 문학은 주인이 되는 거랬지. 이번에는 신수혁이 나의 주인이 되어보라고. 너라면 자신 있어 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이인극의 역할을 애써 서로에게 빼앗기지 않으려던 이들은 결국 역할을 찢어 나누어가지는 것을 택했다. 수혁은 사랑이 그런 것이라고 믿게 되었다. 그런 사랑을 했다. 아득한 시야 속에서 조금도 흐려지지 않는 금빛을 사랑하게 되었다. 풀리지 않던 모든 의구심에 달린 물음표를 떼어내고 마침표를 새로 찍었다. 연인이 손을 잡고 있으면 그곳은 어디든지, 진정 카바레이든 다락방이든 혹은 낙원이든 나락이든지, 그곳이 두 사람만의 카바레가 되었다. 그리고 그들은 그 카바레에서 서로를 문학으로 또 서로를 주인으로 삼아 새로운 계절을 함께 나게 될 것임이 틀림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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